RAPID · 의사결정 권한 설계
Recommend · Agree · Perform · Input · Decide
RAPID이란?
- 제안·동의·실행·조언·결정 다섯 역할로 배정
- 결정은 반드시 한 명, 동의는 최소화
- RACI는 업무, RAPID는 결정을 나눈다
RAPID를 적용한 조직에서 실제로 달라지는 것은 회의 진행 방식이 아니라 관리의 단위입니다. 그전까지는 '주간 경영회의'라는 자리를 관리했다면, 이후에는 '신제품 출고가 승인', '외주 업체 교체' 같은 개별 의사결정 하나하나를 관리 대상으로 올려놓습니다. 결정에 이름이 붙고 그 옆에 사람 이름이 붙는 순간, 어떤 결정이 몇 주째 멈춰 있는지가 목록으로 보입니다. 미뤄진 결정이 누군가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설계 문제였다는 것도 이때 드러납니다. 그래서 사후에 누가 결정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결정하기로 되어 있었느냐를 물을 수 있게 됩니다.
다섯 역할 중 실무에서 판단이 갈리는 곳은 동의(A)와 조언(I)의 경계입니다. 기준은 단순합니다. 그 사람이 반대했을 때 회사가 법적·재무적 책임을 지게 되면 A이고, 결과가 아쉬울 뿐이라면 I입니다. 그래서 A는 법무·재무·안전·품질처럼 규제나 계약이 걸린 기능에 한정되며, 한 건의 결정에 A가 셋을 넘어가면 사실상 합의체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D는 반드시 한 명이고, 두 명을 적고 싶어지는 순간은 그 결정을 두 개로 쪼개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순서에 대한 오해도 잦은데, RAPID는 R→A→P→I→D 순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I를 모아 R이 안을 만들고, A와 조율한 뒤 D가 정하고 P가 이어받는 순서이며, 철자는 기억을 돕는 장치일 뿐입니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어긋나는 지점은 D를 직급 순으로 배정하는 것입니다. 결정 권한을 모두 대표나 본부장에게 올려두면 표는 깔끔해지지만 기존 결재선과 똑같아져서, 두 달쯤 지나면 '역할표는 만들었는데 왜 여전히 안 돌아가느냐'는 말이 나옵니다. D는 직급이 아니라 그 결정의 결과를 숫자로 책임지는 사람에게 붙어야 합니다. R을 '자료 만드는 사람'으로 낮춰 보는 오해도 흔한데, R은 I를 모으고 A를 설득해 안을 들고 오는 역할이라 실무 영향력은 오히려 가장 큽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만든 역할표를 반년 넘게 손대지 않는 것이 흔한 실패 경로입니다. 조직 개편이나 신규 사업이 생기면 그 시점에 다시 배정해야 합니다.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드컴퍼니(Bain & Company)가 조직의 의사결정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제시한 프레임워크로, 다섯 역할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 이름 붙였습니다.
임직원 320명, 연매출 약 1,800억 원의 산업용 부품 제조사 A사입니다. 신제품 3종의 출고가 결정이 4개월째 미뤄지면서 대형 고객사 두 곳의 납품 기회를 놓쳤습니다. 가격 안건은 주간 경영회의에 11주 연속 재상정됐다가 결론 없이 내려왔습니다. (가상 예시)
- 전략기획팀장이 최근 6개월 회의록에서 두 번 이상 다시 올라온 안건 14건을 추려 보니, 그중 9건이 가격·투자·인력 배치에 걸린 결정이었습니다.
- 가격을 두고 영업본부장은 '시장가는 우리가 본다'고 했고 재무팀장은 '마진율 승인은 우리 소관'이라 맞섰는데, 두 사람 모두 스스로를 결정자로 적어 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 대표이사가 출고가 결정의 D를 사업부장 한 명으로 지정하고, A는 마진율 하한선을 지키는 재무팀장만 남겼습니다. 영업본부장과 품질팀장은 I로 내려 의견만 내게 했습니다.
- R을 맡은 상품기획 과장은 격주 금요일까지 가격안과 원가 근거를 올리고, D는 접수 후 5영업일 안에 승인이나 반려를 회신한다는 규칙을 사내 문서로 못 박았습니다.
- 운영 석 달 뒤 가격 안건의 평균 결정 소요일이 47일에서 9일로 줄었고, 주간 경영회의 안건은 12건에서 7건으로 감소했습니다. 재상정 14건 중 11건이 종결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