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 · 프로세스 혁신
Process Innovation · BPR
PI이란?
- 더 빨리가 아니라 왜 하는가에서 시작
- 시스템·규정·평가를 함께 바꿔야 정착
- 절차 정리 없는 자동화는 비효율의 전산화
프로세스 혁신이 실제로 바꾸는 것은 절차도의 모양이 아니라 일의 주인과 판단 권한입니다. 담당자별로 잘게 쪼개 놓은 업무를 하나의 흐름 단위로 다시 묶으면, 서류가 책상과 책상 사이를 오가며 기다리던 시간이 사라집니다. 대부분의 업무에서 리드타임을 잡아먹는 것은 실제 작업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는 대기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된 혁신의 결과물은 '더 빨라진 절차'가 아니라 '더 적은 사람이 더 큰 권한으로 끝내는 절차'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과제를 고를 때는 경계를 먼저 긋는 편이 안전합니다. 한 부서 안에서 끝나는 일은 개선 과제로 두고, 세 개 이상 부서의 손을 타는 일만 혁신 과제로 올리는 식입니다. 전자결재 도입이나 RPA는 혁신 자체가 아니라 재설계된 흐름을 떠받치는 수단이므로 순서가 바뀌면 효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To-Be를 그릴 때는 전체 건수의 8할을 차지하는 표준 케이스를 기준으로 설계하고 드물게 발생하는 예외는 별도 경로로 빼는 편이 낫습니다. 예외를 전부 담으려다 새 절차가 옛 절차보다 복잡해지는 일이 흔합니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어긋나는 지점은 시스템을 먼저 계약하고 프로세스를 나중에 손보는 순서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존 결재 단계가 그대로 화면으로 옮겨가고, 종이로 3일 걸리던 일이 전산으로 2.5일 걸리는 결과가 남습니다. 전결 규정과 평가 기준을 함께 고치지 않으면 새 절차는 반년 안에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권한을 넘겨받은 팀장이 사고를 겁내 관행상 상급자에게 다시 물어보기 시작하면서 비공식 결재가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혁신을 인력 감축과 묶어 발표하는 순간 현업의 협조는 그날로 끊깁니다. 줄어든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먼저 말해야 데이터가 정직하게 나옵니다.
마이클 해머와 제임스 챔피가 1993년 『리엔지니어링 기업혁명』에서 제시한 BPR 개념이 출발점입니다. 이후 전면 재설계의 부작용이 지적되며, 지속적 개선 및 디지털 전환과 결합한 단계적 접근으로 발전했습니다.
가상의 사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임직원 380명, 연매출 900억 원대의 산업용 부품 유통사 A사의 이야기입니다. 고객사 견적 요청에 회신하기까지 평균 5.2일이 걸렸는데, 경쟁사는 이틀 안에 답을 주고 있었습니다. 영업본부장이 '인원을 더 붙여야 하나'라고 묻는 자리에서 4개월짜리 재설계 과제가 시작됐습니다.
- 영업지원팀 과장이 최근 6개월 견적 1,842건의 시스템 처리 이력을 뽑아보니, 평균 5.2일 가운데 실제 원가를 계산한 시간은 3시간 남짓이고 나머지는 전부 대기였습니다.
- 병목은 단가 확인이었습니다. 구매팀 담당자가 '공장에 물어봐야 안다'며 회신을 미루는 동안, 견적서는 평균 2.7일을 누구의 일도 아닌 상태로 멈춰 있었습니다.
- TF가 결재자 네 명에게 최근 1년 반려 이력을 펼쳐 보이자 담당 상무가 '내가 돌려보낸 게 세 건뿐이네'라고 말했고, 그 자리에서 3,000만 원 이하 견적은 팀장 전결로 정리됐습니다.
- 회전율 상위 200개 품목의 표준 단가표를 만들어 영업이 직접 조회하게 하고, ERP 견적 화면과 전결 규정, 영업지원팀 평가지표를 같은 날 한꺼번에 고쳤습니다.
- 4개월 뒤 평균 회신 기간은 5.2일에서 1.4일로, 견적 대비 수주율은 18%에서 24%로 올랐습니다. 감원은 한 명도 없었고 영업지원 인력 2명이 신규 거래처 발굴 업무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