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P · 전사적 자원관리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ERP이란?
- 재무·인사·생산 등 전사 통합 관리
- 흩어진 데이터를 하나로
- 기업 운영의 척추
ERP를 넣는 순간 실제로 바뀌는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입니다. 그동안 구매팀 엑셀의 '품목명'과 생산팀 도면의 '품번'이 달라도 사람이 눈치로 맞춰 왔다면, ERP는 그 둘을 같은 코드로 쓰도록 강제합니다. 전표를 끊는 순서, 승인 권한, 재고를 차감하는 시점까지 시스템이 정한 흐름을 따라야 하므로 ERP 도입은 IT 사업이 아니라 업무 표준화 사업입니다. 성패는 제품 성능보다 마스터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누가 결정하느냐에서 갈립니다.
선택지는 규모로 나뉩니다. 티어1로 불리는 SAP S/4HANA·오라클은 해외 법인과 복잡한 원가 구조를 다루는 대기업용이고, 중견·중소기업은 더존, 영림원, MS Dynamics 같은 제품을 검토합니다. 구축 방식은 서버를 직접 두는 온프레미스와 월 사용료를 내는 클라우드로 갈리며, 기간은 단일 사업장이면 6~9개월, 다법인·다공장이면 12~18개월을 잡는 것이 보통입니다. 경계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설비 실적을 초 단위로 잡는 MES, 고객 접점을 다루는 CRM, 결재·게시판 중심의 그룹웨어는 연동 대상이지 대체 대상이 아닙니다. ERP는 돈과 물건이 움직인 결과를 남기는 원장이고, 비용은 라이선스보다 구축·컨설팅비가 더 커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가장 흔한 실패는 '우리 회사는 특수하다'며 커스터마이징을 쌓는 것입니다. 표준 화면을 뜯어고칠수록 벤더의 정기 업그레이드를 받지 못하고, 몇 년 뒤 담당 개발자가 퇴사하면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시스템이 남습니다. 두 번째는 오픈 날짜에 쫓겨 재고 실사와 품목 코드 정리를 건너뛰는 경우입니다. 장부 수량과 창고 수량이 어긋나는 순간 현업은 곧바로 엑셀을 다시 꺼내고, 이중 장부가 굳으면 ERP는 입력 품만 늘어난 껍데기가 됩니다. 오픈일은 끝이 아니라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하는 날이라는 점을 경영진이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1990년대 제조 자원관리(MRP)에서 전사 통합으로 확장되며 ERP로 발전했고, SAP 등이 대중화했습니다.
가상의 사례로 살펴보겠습니다. 경기도에 공장 두 곳을 둔 자동차 부품 제조사 A사는 임직원 320명, 연매출 약 780억 원입니다. 수주·구매는 엑셀, 회계는 별도 프로그램, 재고는 창고반장 수기 장부로 굴러가다 보니 월 결산에 12영업일이 걸렸습니다. 전산 재고와 실사 재고가 맞는 비율은 76%에 그쳤고, 결국 클라우드 ERP 9개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 킥오프에서 대표가 이번엔 전산팀 일이 아니라 각 부서장 일입니다라고 못 박았고, 구매·생산·품질·회계에서 과장급 6명을 차출해 절반은 프로젝트룸에 상주시켰습니다.
- 가장 오래 걸린 일은 품목 코드 정리였습니다. 부서마다 다르게 부르던 1만 2천 개 품목을 실사로 대조해 8,400개로 줄이는 데만 11주가 걸렸고, 단종 품목 3천여 건은 폐기 처리했습니다.
- 생산관리부장이 '우리 도장 공정은 특수해서 화면을 바꿔야 한다'고 버텼지만, PMO 팀장이 표준 화면으로 두 달 써 본 뒤 다시 보자고 정리해 커스터마이징 요청 41건 중 9건만 반영했습니다.
- 오픈 첫 달은 기존 엑셀을 병행했습니다. 현장 반장들이 바코드 입력을 빠뜨려 재고가 틀어지자, 생산팀장이 매일 아침 15분씩 전날 미입력 건을 같이 찍어 보며 입력 습관을 잡았습니다.
- 1년 뒤 월 결산이 12영업일에서 5영업일로 줄었고, 재고 정확도는 76%에서 97%로 올랐습니다. 납기 회신을 하루 안에 주게 되면서 긴급 외주 가공비도 연 1억 8천만 원가량 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