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템 · 사전 부검
Premortem
프리모템이란?
- 실패를 전제하면 위험이 쉽게 나온다
- 침묵 개별 작성이 집단사고를 막는다
- 사후 검토와 달리 아직 바꿀 수 있을 때
프리모템이 실제로 바꾸는 것은 위험 목록의 길이가 아니라 발언의 자격입니다. 평소 회의에서 '그거 잘 안 될 것 같은데요'는 그 사람의 의견이라 곧바로 반박 대상이 되지만, 실패가 이미 전제로 깔린 자리에서는 같은 말이 분석 결과로 접수됩니다. 그래서 실무자가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꺼내지 않던 정보 — 현업 팀의 성수기 일정, 핵심 인력의 이직 조짐, 협력사의 납기 이력 — 가 처음으로 회의록에 남습니다. 낙관을 꺾자는 것이 아니라 낙관을 검증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절차이고, 위험을 말한 사람이 그 위험의 담당자가 되는 구조가 덤으로 따라옵니다.
형태는 대개 두 가지로 갈립니다. 착수 회의 뒤에 붙이는 20~30분 약식형은 5~8명이 모여 상위 3개만 건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투자 규모가 크거나 한번 틀면 되돌리기 어려운 사업에는 반나절짜리 확장형을 씁니다. 어느 쪽이든 계획을 만든 사람들끼리만 모이면 소득이 없습니다 — 실행을 떠안을 현장 부서, 이해가 엇갈리는 부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실패해 본 사람을 섞어야 새 이야기가 나옵니다. 리스크 등록부와도 성격이 다릅니다. 등록부는 정해진 항목을 채우는 문서 작업이지만, 프리모템은 아직 어느 문서에도 없는 실패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작업입니다. SWOT의 위협이 외부 환경을 본다면 프리모템은 우리가 저지를 실수를 봅니다.
현장에서 제일 많이 어긋나는 지점은 의사결정권자의 한마디입니다. 실패 이유가 나오는 도중 임원이 '그건 이미 검토했습니다'라고 받는 순간 회의는 계획 방어전으로 바뀌고,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진행자는 그 자리에서 판단하거나 해명하지 말고 일단 적기만 하자는 합의를 미리 받아 두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오해는 목록을 만들면 끝이라는 생각입니다. 상위 항목이 일정·예산·범위 중 하나도 바꾸지 못했다면 그 프리모템은 결재를 위한 요식 행위였을 뿐입니다. 이미 결재가 끝나 수정이 불가능한 계획에 뒤늦게 붙이는 것, 모든 회의마다 습관처럼 돌리는 것도 같은 결과로 끝납니다.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이 제안한 기법으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2007)에 소개되며 널리 알려졌습니다. 미래 사건을 과거형으로 상상할 때 원인을 더 구체적으로 떠올린다는 연구에 근거합니다.
가상의 사례로 살펴보겠습니다. 국내 자동차 부품사 A사는 임직원 620명, 연매출 2,400억 원 규모입니다. 8개월간 9억 원을 들여 전 공장에 생산관리시스템(MES)을 까는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었는데, 3년 전 같은 시도가 현장 반발로 6개월 만에 중단된 이력이 있었습니다. 착수 2주 전, PMO는 킥오프 대신 프리모템을 먼저 잡았습니다.
- PMO를 맡은 김 팀장이 워크숍 첫머리에 '1년 뒤 이 MES는 아무도 안 쓰고 현장은 다시 엑셀로 돌아갔습니다'라고 못을 박고 시작했습니다.
- 생산·품질·IT·구매 14명이 8분간 각자 다섯 줄씩 적었고, 야간조 반장은 '교대 인계 시간에 태블릿 입력할 20분이 어디 있느냐'고 써냈습니다.
- 돌아가며 읽으니 실패 이유가 41개, 중복을 묶어 17개로 정리한 뒤 현장 미사용·마스터 데이터 부실·협력사 코드 불일치를 상위 3개로 올렸습니다.
- '데이터 정제는 우리 일이 아니다'라며 IT팀과 생산관리팀이 30분을 다퉜고, 결국 정제 전담 2명을 3개월 배정하고 예산 3,200만 원을 증액했습니다.
- 오픈 8개월 뒤 현장 입력률은 94%, 안정화 기간은 계획 대비 6주 단축됐고, PMO는 3,200만 원 추가 투입으로 재작업 비용 1억 8천만 원을 막았다고 결산했습니다.